포르쉐에서 터보라는 딱지가 붙으면 최고를 뜻한다. 여기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더해졌다. 최고에서 더 위의 모습, 아니 앞으로의 모습이 어떨지를 보여준다.
여태 타 본 포르쉐 중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출력이 높다. 3억 가격표를 달고 있는 700마력짜리 파나메라다. 정확한 모델명은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다. 요즘 아무리 고성능 차가 많다 하더라도 700마력은 이야기가 다르다. 또 다른 세상의 힘이다. 582마력 V8 4.0ℓ 트윈 터보 엔진과 136마력 전기모터가 힘을 모은 결과물이 700마력이다. 대개 포르쉐는 제원상 수치보다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유명한데 700마력이라 적었다면 어지간한 슈퍼카도 긴장할 가속력을 보여줄 것이라 예상한다.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시동을 켜고 달려 보기로 한다.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괴력을 지니고 있으니 밟아야만 하는 녀석이다.
곧장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 플러스에 놓고 가속 페달을 무자비하게 밟는다. 터보 랙 따위는 전혀 없이 튀어 나간다. 배기 사운드도 제법 우렁차다. 온몸은 시트에 파묻히고 타이칸 터보 S와 맞먹는 가속력이다. 최대토크가 무려 88.8kg·m다. 8단 듀얼 클러치 유닛을 통해 네 바퀴를 굴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2초다. 이것은 포르쉐 브로셔에 적혀 있는 수치다. 계측기를 통해 측정해 보니 3.13초가 나왔다. 제원 보다 빠른 수치다. 심지어 건장한 성인 남성이 2명 탔고 촬영 장비까지 실려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타이어다. 여름용 타이어가 아닌 사계절용 타이어였다. 만약 그립이 더 끈적한 타이어에 운전자 홀로 타고 연료 탱크도 비운 후 선선한 날씨에 측정한다면 2초대를 마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차중량이 2.4t이 넘어가지만 이를 초월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봐도 힘은 남아돈다. 굳이 다운시프트를 통해 엔진 회전수를 올릴 필요도 없다. 어느 영역에서도 풍부한 가속력을 자랑한다. 변속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흠잡을 게 없다. 변속 속도는 두말하면 입 아프고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듀얼 클러치 특유의 저속 구간 울컥거리는 현상도 잘 잡아 승차감을 해치지 않는다. 파나메라 최고 등급 모델에 알맞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세팅이다. 이 좋은 변속기로 엔진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기어비도 공도에 딱 맞아 애매한 구간이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달려도 되고 직접 조정을 원한다면 장단을 잘 맞춰준다. 여기에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가 노면에 밀착되는 훌륭한 고속안정감으로 환상적인 크루징이 가능하다.
서스펜션의 조율이 기가 막힌다. 포르쉐를 탈 때마다 느끼지만 하체는 그 어떤 브랜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오지랖이겠지만 포르쉐용 애프터마켓 서스펜션이 잘 팔릴까 걱정된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이 장르에 없다. 당연히 승차감은 롤스로이스가 훨씬 좋지만 스포츠와 컴포트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은 포르쉐가 가장 잘 안다. 대개 에어 스프링을 단 차들은 코너링에 살짝 굼뜬 모습을 보여주는데 파나메라는 코일오버를 단 것처럼 돌아 나간다. 스티어링 피드백도 빠르면서 불필요한 정보는 운전자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심지어 언더스티어 농도도 옅다. 이상적인 라인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차체가 길고 무겁지만 토크 벡터링과 후륜조향 시스템과 같은 첨단 아이템으로 핸디캡을 지워버린다. 복합코너에서도 미꾸라지처럼 자연스럽게 탈출한다. 앞서 말했듯이 퍼포먼스에 비해 그립이 약한 타이어임에도 코너링 퍼포먼스가 준수하다. 본디 코너는 타이어빨(?)로 타야 하는데 이 녀석은 그것조차 거스른다.
잘 달리는 만큼 잘 서야 한다. 브레이크 캘리퍼 사이즈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거대한 림에 닿을 정도의 볼륨감을 자랑한다. 게다가 디스크가 카본 세라믹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리어 브레이크도 모노 캘리퍼인 점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보기에 좋으니까. 여하튼 브레이크 시스템은 출력과 섀시를 다루기에 충분하다. 노즈다이브 혹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을 잘 억제했고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지치지 않는다. 게다가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으니 마음 놓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된다. 페달의 답력과 스트로크는 일반적인 차와 같아 딱히 적응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실컷 달렸으니 쉬엄쉬엄 여유 있게 달려야 보겠다. 딱히 별도로 충전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배터리가 가득 찼다. 전기모터의 힘만으로 움직여도 힘은 충분하다. 답답하지 않을 정도이며 생각보다 꽤 밀어주는 느낌도 든다.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전기모터로만 34km 주행가능하다고 한다. 출퇴근 정도는 확보할 수 있는 주행가능거리다. 촬영하면서 직접 몰아본 결과로는 약 50km 정도 가능했다. 배터리를 아끼려고 하지도 않았고 교통의 흐름을 따라가기만 했다.
배터리를 다 사용하고 나서 엔진을 깨울 때도 이질감이 없다. 소리소문없이, 그리고 진동도 없이 작동 시작한다. 그러면서 30분 정도만 달리면 배터리가 가득에 가깝게 채워진다. 그러니 연료 가득 넣고 가속 페달만 잘 달래면서 엔진과 전기모터를 오가면 700km 이상은 주행 가능할 것 같다. 단지 퍼포먼스를 위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단 줄 알았더니 기특하게도 경제성까지 챙겼다. 이 정도 차를 모는 운전자가 기름값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고 주유소 자주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었다.
정말 다 좋다. 사실 시승 전 3억원이라는 가격표가 걸렸다. 물론 살 사람들은 사겠지만 보통 파나메라를 1억원 후반대로 많이 구매하기에 선뜻 지르기가 망설여진다. 3일 정도 타 보니 가격은 납득이 된다. 보통의 파나메라 가격에 700마력이라는 어마어마한 힘 값을 더하고 그 힘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세팅한 값도 더해지고 긴 주행가능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값을 더하면 납득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에 파나메라 하이엔드 트림을 타는 자부심까지 더해지니 가격에 확신이 든다. 어떻게 보면 볼륨 트림이 아니라 포르쉐의 최고를 보여주는 트림이기에 사실 가격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재료와 기술만을 사용해 파나메라를 만든다면 이렇게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였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050×1935×1430mm
휠베이스 2950mm | 엔진형식 V8 터보+전기모터, 가솔린
배기량 3996cc | 최고출력 700ps | 최대토크 88.8kg·m
변속기 8단 듀얼 클러치 | 구동방식 AWD
연비 7.5km/ℓ | 가격 3억1700만원(시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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