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쇼파처럼 안락하다
“우리 집도 이런 고급 SUV 한 대 있으면 좋겠다.” 옆자리 앉은 애인이 말했다. 앞서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건만, 차에 별 관심 없는 그녀는 분명 ‘고급 SUV’라고 말했다. 하긴, 링컨 노틸러스는 충분히 그럴만하다. 흘깃 봐도 구석구석에 값비싼 분위기가 가득하다.
링컨 브랜드 콘셉트 '고요한 비행'과 어울리는 터빈 날개 모양 21인치 휠을 달았다
길이 4825mm, 너비 1935mm, 높이 1700mm, 휠베이스 2850mm
다가서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스마트키 쥔 채 가까이 가면 옆구리 바닥에 고급스러운 ‘田(전)’ 모양 링컨 엠블럼이 빛난다. 개인적으로 화려한 날개나 색상을 쓰지 않고도 값져 보이는 몇 안 되는 엠블럼이다. 어딘가 벤틀리 향을 슬쩍 풍기는 둥그스름한 스타일도 매혹적이다.
조금 과할 정도로 큰 13.2인치 센터페시아 화면 / 링컨의 새로운 특징 '피아노 키 변속기'
진짜는 실내다. 묵직한 문짝을 당기면 화려한 대시보드가 드러난다. 센터페시아 화면, 송풍구, 버튼식 시프트레버, 여러 버튼…. 누가 미국차 아니랄까 봐 온갖 테두리를 모두 크롬 띠로 감싸놨다. 중후한 색감의 진짜 나무 장식과 베이지색 가죽 장식에도 불구하고 화사하게 반짝이는 이유다.
그녀는 처음 탈 땐 별말 없다가, 한창 주행 중에서야 차에 대한 소감을 꺼냈다.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답은 안락함이었다. 고급스러운 SUV가 도로 위를 유영하듯 달리는 느낌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동승자가 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운전자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노틸러스는 이렇게 타는 차다. 화려한 실내 분위기를 누리며 부드럽게 달릴 때 가장 만족스럽다. 모든 초점을 확고하게 편안함으로 맞췄으니까. 독일 고급 브랜드를 쫓아 애매하게 고성능을 탐한 동급 경쟁 모델과는 결이 다르다.
실내가 특히 조용하다. 어찌나 소리를 꽉 틀어막았는지 창문을 열면 깜짝 놀랄 만큼 바깥소리가 큼직하게 다가온다(이중접합 차음 유리다). 달릴 때 V6 엔진은 소리를 죽이고 노면 소음도 멀찍이서 들려온다. 본래 노틸러스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정숙하기로 유명했다.
무려 19개 스피커를 울리는 레벨 울티마 오디오 시스템이 들어갔다
그 고요한 실내에 음악 소리를 퍼뜨리자, 그녀가 또 입을 열었다. “황홀하다”라고. 스피커 성능에 예민하지 않은 ‘막귀’인 나조차 소리가 남달리 풍성한 느낌을 받았다. 링컨만이 독보적으로 사용하는 레벨 울티마 오디오 시스템으로, 스피커 개수만 19개에 달한다. 이 좋은 소리를 담아내고자 그토록 방음재를 꼼꼼히 둘렀나 보다.
황홀한 음악 감상에 빠진 그녀(그녀는 음악 관련 업계 종사자다)를 방해하지 않고자 주행 패턴을 느긋하게 늦췄다. 노틸러스가 진가를 발휘하는 상황이다. 부드러운 스프링이 충격을 꿀꺽 삼키는데, 조금 출렁이는 움직임이 더 풍요롭게 다가온다. 운전자로서는 댐퍼를 조금만 더 조이면 보다 민첩할 듯하지만 나름대로 맛이 있어 이대로도 좋다. 덕분에 오래도록 달려도 편하기도 하고.
달리면 달릴수록 노틸러스는 매력적이었다. V6 엔진이 발끝으로 정교한 회전 질감을 전하고 1초에 50번씩 강도를 조율하는 ‘어댑티브 서스펜션’이 속도와 주행 상황에 맞춰 편안함과 고속 안정감 사이 균형을 지킨다. 무엇보다 조용해서 한참을 달려도 피로감이 적다. 쭉 뻗은 길을 달리는 대륙 SUV답다.
5500rpm에서 최고출력 333마력, 3000rpm에서 최대토크 54.7kg·m 성능을 내는 V6 2.7L GTDI 가솔린 엔진
시승기 내내 편안함을 말했지만, 그렇다고 이 차가 느리다는 얘기는 아니다. 언제든 가속 페달을 밟으면 부드럽게 항속하던 V6 2.7L 트윈터보 엔진이 즉각 최고출력 333마력 최대토크 54.7kg·m 힘을 분출하며 화끈하게 나아간다. 적지 않은 배기량답게 고속까지 힘도 꾸준한 편. 무게가 2165kg이라 민첩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빠르다.
연비는 누적 400km를 달리는 동안 1L에 9.7km를 기록했다. 길이 4825mm 큰 덩치에 V6 트윈터보 엔진을 얹고 네 바퀴까지 굴리는 SUV라는 조건을 고려하면 썩 괜찮은 효율이다. 이차에 반했던 그녀는 연비 숫자를 보고 “확 깬다”고 말했지만. 1L에 8.8km를 달린다는 공인 복합연비를 말했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지난 1박 2일간 함께한 링컨 노틸러스는 여유로웠다. 승차감은 나긋했고, 실내는 정숙하며, 안팎은 화사하다. 그 분위기에 취해 괜히 내 마음까지 느긋하게 가라앉는다. 차에 앉을 때마다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랄까? 가슴이 방방 뛰는 재밌는 차는 아니었지만, 치열한 삶 속에 쉼표가 되어줄 만한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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