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스포츠 드라이빙의 경계에서 기가 막히게 조율했다. 자극적인 맛을 강조하는 고성능 세단 시장에서 깊고 맑은 맛을 선사한다. 그것이 파나메라 GTS의 매력이다.
새빨간 대형 개구리 앞에 섰다. 이 녀석을 보려고 시승 이틀 전부터 잠을 설쳤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맥라렌 같은 슈퍼카 브랜드는 나와는 다른 세상 같은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포르쉐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손끝이라도 살짝 닿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게다가 성능도 그 브랜드들에 비해 꿇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포르쉐는 현실로 이룰 가능성이 있는 꿈의 브랜드 정도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아 있다.
오늘 만나는 녀석은 파나메라 GTS다. 6기통 트윈 터보 엔진을 얹는 파나메라 4와 8기통 트윈 터보 엔진을 얹는 터보 S의 중간쯤 위치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파워트레인 구성에서부터 그 오묘한 위치가 드러나는데, GTS는 터보 S에 탑재되는 것과 같은 4.0ℓ 8기통 트윈 터보 엔진을 얹고 있지만 터빈의 사이즈를 줄이며 출력을 낮췄다. 결과적으로 파나메라 GTS의 최고출력은 490마력, 최대토크는 63.3kgᐧm다. 600마력이 훌쩍 넘는 터보 S와 비교하면 손해 보는 게 아니냐고? 우리의 외계인 군단은 그리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붉은 차체는 포르쉐 GTS 라인업의 시그니처 컬러와도 같다. 여기에 조합된 검은색 휠은 회색 테두리를 둘렀고, 프런트 도어 아래에는 자그마하게 GTS 레터링도 새겼다. 여기에 네 개의 머플러 커터와 마니아들을 환호하게 만든 가변형 스포일러도 장착했다. 윈도 몰딩과 도어 캐치의 안쪽 등 차체 곳곳에 블랙 포인트를 준 것도 인상적이다.
외관을 감상할 시간도 없다. 얼른 운전석에 앉아 시동부터 걸어본다. 시동 스위치는 스티어링 휠의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시동 버튼이 아닌 차를 무척 오랜만에 만났다. 찰칵거리면서 돌아가는 감각이 키를 돌려 시동을 걸던 딱 그 감성이 떠오르게 만든다. 시동 스위치의 위치가 왼쪽에 있는 이유는 레이스 대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과거 르망 24시 대회는 운전자가 경주차의 반대편에 서서 스타트 신호와 함께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 동선까지 최소화를 시킨 셈이다. 그만큼 레이스 DNA에 진심인 포르쉐다.
어쨌든 시동을 걸고 이 차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먼저 놀랐던 것은 엔진의 회전 질감이다. 부드럽고 묵직하게 회전수를 올리는데, 가속 페달을 깊게 밟을수록 점점 출력을 쥐어짜는 맛이 있다. 순간적으로 자연흡기 엔진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농담이 아니라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며 꾸준히 출력을 내뿜는 느낌이 정말 자연흡기 엔진의 그것과 유사하다. 터빈의 스풀업과 함께 출력이 터지는 터보차저 엔진의 느낌을 지우려 했고 그 결과물은 무척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다. 저속에서는 생각보다 가속 페달을 더 깊게 밟아야 차가 움직인다. 처음에는 이와 같은 세팅에 의아했는데 오히려 이러한 점이 고출력 차를 다루는데 필요한 예민함을 덜어주었다. 특히 주차장과 같이 저속으로 조절을 할 때처럼 말이다.
이러한 엔진과 궁합을 맞추는 8단 PDK 변속기는 설명이 필요 없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포르쉐 시승기에서 지겹도록 듣고 또 들었을 PDK 변속기는 일상적인 주행을 할 때도, 스포츠 주행을 할 때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속력이 몇이든, 회전수가 얼마이든, 현재 단수가 몇 단이든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적절한 단수를 순식간에 맞추며 달려 나간다. 심지어 이런 놀라운 일을 척척 해내는데 일하는 티도 내지 않는다.
드라이브 모드를 노멀에 두고 느긋하게 달릴 때는 플래그십 세단다운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물론 다른 브랜드의 플래그십처럼 출렁거리는 승차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서스펜션은 꽤 탄탄한 편이지만 탑승객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불필요한 충격은 거르고 운전자에게 필요한 노면의 정보는 확실하게 전달한다.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뒷바퀴가 따라오는 움직임이 일반적인 자동차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후륜 조향 기능이 탑재된 덕분이다. 앞머리가 방향을 바꾸면 꼬리가 감겨서 따라오는 느낌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을 떠오르게 만든다. 후륜 조향 기능은 5m가 넘는 전장에 휠베이스만 2950mm인 대형 세단에게 소중한 아이템이다. 좁은 골목을 다닐 때와 주차를 할 때 예상했던 각보다 훨씬 작게 돌아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충분하다.
이제 차와 좀 친해진 것 같다. 이 말은 스티어링 휠에 붙은 드라이브 모드를 시계 방향으로 돌릴 때가 됐다는 것이다.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모드가 있는데 모드를 바꿀수록 차의 반응이 조금씩 더 공격적으로 바뀐다. 스로틀의 반응이 더욱 빨라지는 것은 물론, 변속기는 더 낮은 기어를 찾아 물고 기다린다. 본격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으면 거침없이 속력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걱정 혹은 기대보단 한결 순한 맛이다. 운전자를 내동댕이치는 것 같은 무자비한 출력이 아니다. 8기통 트윈 터보 엔진을 장착한 고출력 세단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순하다. 묵직하고 차분하지만 충분히 강력하다. 게다가 속력을 올릴수록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운전자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무럭무럭 자란다.
다르게 해석하면 굳이 힘을 쥐어 짜내면서 달리는 차는 아니라는 뜻이다. 넉넉한 출력을 통해 여유롭게 장거리 주행을 즐길 수 있는 편안함을 지니고 있다. 방향성을 따지면 스포츠카보다는 GT카의 성격이 짙다. 그렇다고 코너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포르쉐 가문의 자동차답게 차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경험 역시 가능하다. 이러한 경험은 섀시 설계의 우수성도 있겠지만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과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 스포츠(PDCC Sport)를 통해 더 크게 느껴진다.
앞서 말한 후륜 조향 시스템의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코너를 마주하고 충분히 감속한 이후 코너의 정점을 향해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앞머리가 가볍게 말리면서 꼬리가 동시에 따라온다. 이를 통해 운전자가 원하는 라인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생각하는 정도로 말이다. 스티어링 성향은 약한 언더스티어지만 예측하기도 쉽고 수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 과정에서 롤링과 피칭은 놀라울 정도로 억제되어 있다. 커다란 덩치에 2.1t의 무게를 생각하면 감동이 두 배로 밀려온다.
코너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스티어링 휠이다. 포르쉐의 스티어링 휠은 직경이 작고 림이 가늘다. 그래서 손으로 말아 쥐면 착 감기는 감각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디자인은 클래식한 3 스포크 타입인데, 버튼을 최소화해서 스포크를 더욱 가늘게 디자인한 것도 포르쉐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대신 스티어링 휠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반자율주행 시스템의 조작 장치는 스티어링 칼럼의 왼쪽에 별도의 레버로 자리 잡고 있다.
브레이크 시스템도 이 거구를 다루는 데 충분하다. 우스갯소리로 포르쉐의 브레이크는 믿지만 뒷차의 브레이크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브레이크 스티어 현상과 노즈다이브는 잘 억제되어 있고, 코너를 돌면서 속도를 줄여도 불안한 거동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만큼 기본기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은 냉간 시 소음이 꽤 크다는 것인데, 창문을 닫아도 그 소리가 실내로 살짝 유입되는 것은 옥에 티다.
소리 이야기가 나온 김에 파나메라의 연주 실력도 들어보아야 한다. 8기통 엔진이라는 훌륭한 악단을 가지고 있지만, 배기음을 통한 완벽한 연주를 기대한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창문과 스로틀을 모두 활짝 열어보아도 등골이 짜릿해지는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금은 먹먹하고 흐린 배기음이다. 누군가는 포르쉐의 배기음이 원래 그다지 매력적인 소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기억을 되짚어 보면 흔히 ‘귀곡성 사운드’라 불리는 카레라 GT도 포르쉐의 실력이다. 하고자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신 실내에서 들리는 엔진음은 합격. 심장이 두근대고 감탄사가 나오는 8기통 엔진의 전형적인 소리다. 물론 이도 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부메스터 스피커에 귀를 맡기자. 당신이 원하는 어떤 음악이든 훌륭하게 연주할 줄 아는 사운드 시스템이다.
파나메라 GTS와 한바탕 신나게 놀았더니 보내주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함께한 시간이 어떻게 흐른 줄도 모를 만큼 순식간에 시승 일정이 끝났다. 역시 포르쉐다. 운전의 재미를 원하는 운전자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할 줄 아는 브랜드다. 트림과 파워트레인을 촘촘하게 나눈 데에도 모두 이유가 있었다. 운전을 좋아하는 운전자는 이 다양한 트림에서 자신의 취향에 정확히 맞는 자동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파나메라 4의 336마력은 아쉽고, 터보 S의 642마력은 피곤하게 느껴진다면 그 중간을 아우르는 GTS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글 | 조현규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050×1935×1415mm
휠베이스 2950mm | 공차중량 2100kg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 배기량 3996cc
최고출력 490ps | 최대토크 63.3kg·m
변속기 8단 듀얼클러치 | 구동방식 AWD
0→시속 100km 3.9초 | 최고속력 시속 300km
연비 7.1km/ℓ | 가격 2억1230만원
자동차 전문 잡지 <모터매거진>
관련 기사👉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 3년 만에 누적 생산량 10만대 돌파
'자동차 > 포르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퍼카는 ‘하차감’ 맛?...“달려보니 내리기 싫네” [Car] (0) | 2022.11.30 |
---|---|
[시승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전동화 세단 –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 (0) | 2022.11.19 |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 3년 만에 누적 생산량 10만대 돌파 '국내 도로에 2400대' (0) | 2022.11.09 |
[시승기] 전동화 시대에 돋보이는 올라운더 스포츠카 – 포르쉐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0) | 2022.11.07 |
[시승]가치 상승 주역, 포르쉐 911 에디션 50주년 디자인 (0) | 2022.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