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0만원이라는 가격표는 차를 직접 느껴본 뒤에는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볼보가 내실을 더욱 단단히 다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출시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볼보의 플래그십 세단 S90 리차지 PHEV다. 기함의 품격이 조용히 다가왔다.
“도대체 어디가 바뀐 거야?”. S90의 키를 받아 들고 내뱉은 첫 마디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이상 디자인에서의 변화를 찾기는 쉽지 않다. 옷매무새를 바로잡듯 범퍼의 디자인이 아주 살짝 바뀐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S90은 2016년 디트로이트 국제 오토쇼를 통해 데뷔했다. 벌써 6년이 지난 디자인이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하다.
디자인에 대해 이리저리 논하기에는 이미 등장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난 녀석이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부분만 몇 가지 꼽아보겠다. 먼저 전체적인 룩 자체가 단정하고 깔끔하다. 휘황찬란한 기교가 없어 맞춤 정장을 입은 듯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헤드램프에 있는 ‘토르의 망치’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프런트 오버행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앞바퀴와 A필러 사이의 거리인 프레스티지 디스턴스를 늘리면서 후륜구동 자동차에 가까운 비율을 빚어낸 것도 마음에 든다. 다만 뒷모습에서 리어램프의 형상은 호불호가 조금 갈리는 듯하다. 필자의 눈에도 앞모습에서 보았던 이미지와 약간 상반된 모습이긴 하지만 썩 나쁘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번 S90은 변화의 초점을 내실을 다지는 데에 두었다. 기존에는 T8으로 불리던 트림(지금도 트렁크 리드에 붙은 배지에는 T8이 적혀있다)이 리차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볼보 전동화 전략의 일부다. 당연하게도 성능 변화의 중심은 배터리와 전기모터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전기차와 비교해도 될 만큼의 전동화 성능을 갖추겠다는 일종의 자신감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렇다면 그 자신감을 직접 확인해볼 차례다. 우선 카탈로그에 적힌 스펙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배터리 용량은 기존 11.6kWh에서 18.8kWh로 늘어났다. 이는 직렬형 배터리 모듈 3개와 고전압 배터리 전체 셀 102개로 구성된다. 배터리의 위치는 차체의 중심을 따라 세로로 배치된 모습이다.
전기 모터의 출력은 이전보다 약 65% 향상됐다. 뒷바퀴를 굴리는 전기모터의 최고출력은 143마력이다. 순수 전기모드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는 59km에 달한다. 서울 직장인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가 30km 내외라고 하니 전기모드 주행만으로도 평일은 충분한 것이다. 여담으로 필자가 시승을 통해 완충부터 방전까지 2회를 거듭해본 결과, 각각 63km, 65km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회생제동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를 8:2 비율로 주행한 결과다.
또한 후드 아래에 있는 4기통 2.0ℓ 엔진은 컴프레서와 터빈을 달아 312마력을 자랑한다. 전기모터와 합산한 최고출력은 455마력, 최대토크는 72.3kg·m이며 8단 자동 변속기와 조합된다. 배기가스가 덜 나오는 저회전 영역은 컴프레서가, 고회전 영역은 터빈이 책임지는 방식이다. 어쨌든 브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고 하는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은 4.8초에 끝낸다. 웬만한 스포츠카 ‘룩’의 자동차는 가볍게 따돌릴 만한 강력한 성능이다.
실내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겉으로 보이는 변경 점은 찾아낼 수 없다. 그러나 볼보의 인테리어는 눈과 손이 즐겁고 편안하다. 단정함을 순위로 매기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다. 마치 고급 서류 가방처럼 인테리어의 모든 요소들이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다.
시동을 걸면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반겨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로 구동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티맵모빌리티와 함께 300억원을 투자해 만든 TMAP과 AI 플랫폼인 누구(NUGU)가 기본으로 탑재된다. 직업의 특성상 다양한 브랜드의 자동차를 타면서 애플 카플레이만큼은 꼭 사용하는 편인데, 유일하게 사용하지 않는 브랜드가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탑재된 볼보다. 편리성의 정도를 따지기보다는, 굳이 그 필요성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다.
특히 운전하면서 수행하게 되는 대부분의 동작을 모두 음성인식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만약 음성인식 시스템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도 적고, 인식률조차 형편없다면 있으나 마나 한 기능에 가까운데, 볼보의 ‘누구’는 다르다. 사투리가 섞인 필자의 빠른 말과 발음을 똑똑하게 알아듣는다. 할 수 있는 기능도 다양하다. 열선 시트와 통풍 시트, 열선 스티어링 휠 작동은 기본이다. 심지어 “엉따 켜줘”, “손따 켜줘” 등의 은어도 알아듣는다. 심지어 영어 제목의 음악을 정직한 한글 발음으로 요청해도 알아듣는 모습에서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2열의 거주성이다. 롱 휠베이스 모델만 수입되는 S90의 전장은 5090mm이며 휠베이스는 3060mm다. 특히 휠베이스가 이전 모델 대비 120mm 늘어났다. 덕분에 뒷좌석 레그룸은 115mm를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확보한 레그룸은 광활하다는 표현을 써도 충분할 정도다. 워크인 스위치를 통해 조수석을 앞으로 밀고 눕히면 키 183cm의 성인이 다리를 꼬아도 될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여기에 바워스&윌킨스 오디오 시스템이 들려주는 소리를 더하면 플래그십 세단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흠뻑 즐길 수 있다. 해상도가 높은 소리는 특정한 음에 무게가 쏠리지 않아서 재즈처럼 다양한 소리가 어우러지는 음악이 특히 잘 어울린다.
차에 대한 감상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달려볼 차례다. 오레포스의 크리스탈로 마감된 전자식 기어노브를 가볍게 당기고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면 2140kg의 차체가 가뿐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라이브 모드는 총 네 가지가 있다. 하이브리드, 파워, 퓨어, Constant AWD 등이다. 먼저 하이브리드 모드는 자동차가 스스로 전기모터와 엔진의 작동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파워모드는 말 그대로 강력한 출력을 발휘하는 모드이며 퓨어 모드는 순수 전기 주행이 가능한 모드다. AWD 모드는 험지나 노면이 거친 곳을 달릴 때 사용하는 모드인데, 이번 시승에서는 AWD 모드를 활용해보지 못했다.
또한 배터리를 조절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자동, 유지, 충전 등 세 가지 모드가 있다. 먼저 자동 모드는 가장 기본적인 모드로 쉽게 말하면 그냥 배터리를 소모하는 모드다. 유지 모드는 현재의 배터리 잔량을 계속 유지하면서 달리는 모드인데,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배터리 사용량을 최소화하면서 일정한 용량을 유지하는 모드라고 보는 것이 맞다. 충전 모드는 엔진의 동력을 배터리 충전에 사용하며 달리는 모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핵심은 이 유지 모드와 충전 모드를 사용하는 방법에 있다. 고속도로처럼 내연기관의 부하가 적은 주행을 할 때는 배터리를 아끼고, 내연기관의 부하가 커지는 시내 주행에 접어들어서는 전기모터로 구동하여 연료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체적인 주행 감각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조용한 실내다. 특히 엔진이 구동할 때 소리가 놀랍도록 조용하다. 정말 예민하게 듣거나 계기판을 보지 않는 이상, 엔진이 깨어나고 잠드는 과정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매우 어렵다. 또한 후륜 서스펜션은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됐는데,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푹신한 승차감도 만족스럽다.
앞서 언급했듯 이 차는 꽤 강력한 출력을 품고 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속력을 높이지만 최고속력은 시속 180km에 제한되어 있다. 파워트레인에는 힘이 남아돌지만 족쇄를 일찍 채우는 느낌이다.
고속 안정감 역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노면이 좋지 않은 구간을 만나도 네 바퀴가 지면을 단단히 붙잡으며 안정적인 트랙션을 발휘한다. 여기에 긴 휠 베이스는 플래그십 세단에서 기대하는 안정감을 선사한다. 대신 운전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차는 아니다.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휘저어보면 전체적인 반응이 꽤 느긋하게 느껴지는데, 장르의 특성상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장르에는 편안한 승차감을 통해 운전의 피로를 낮추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S90의 매력은 장거리 운전에서 진하게 느껴진다. 눈으로 보기에는 얇지만 의외로 푹신한 시트는 올바른 자세를 만들어주고, 시트 안마 기능은 최근 타본 자동차 중 가장 적극적이다. 또한 볼보의 반자율주행 기능인 파일럿 어시스트를 통해 장시간 주행에도 피로가 적게 쌓이는 점은 매우 만족스럽다. 앞차와의 거리를 판단해 속도를 높이고 줄이는 동작이 무척 자연스럽다. 다만 차로의 중앙을 정확히 유지하진 않고, 살짝 우측으로 치우쳐서 달리는 모습은 옥에 티다.
볼보 S90 리차지 PHEV의 매력을 제대로 맛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만 PHEV를 운용하기 전 꼭 필요한 것은 자신의 집 혹은 회사에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완속 충전기다. 이 조건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에게나 적극적으로 권할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다. 단정한 스타일링에, 넉넉한 출력,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통한 효율까지 갖추었다. 8740만원이라는 가격표는 차를 직접 느껴본 뒤에는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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