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말마따나 ‘그란투리스모(장거리 여행용 고성능 자동차)’라고도 부를만하다
때는 2015년, 디자인학과 학생이던 나는 한 자동차 사진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새로우면서도 멋있는’ 산업디자인의 이상에 다다른 모습에 푹 빠졌고, 저런 디자인을 그려낸 디자이너 재능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그 차의 이름은 폭스바겐 스포츠 쿠페 GTE 콘셉트. 그리고 그 콘셉트를 이어받은 양산차가 바로 2017년 등장한 아테온이다. 당시 ‘도로 위로 나온 콘셉트카’라고 부를 만큼 콘셉트카와 똑같았다.
2015년 공개한 폭스바겐 스포츠 쿠페 GTE 콘셉트 / 2017년 등장한 폭스바겐 아테온 양산차
어느덧 출시 후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신선했던 충격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도 멋은 여전하다. 비례는 군더더기 없고 윤곽은 날렵하다. 폭스바겐도 더는 손볼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부분변경 신차를 ‘숨은그림찾기’ 수준으로 바꿔놨다. 숨은 그림을 찾았는가? 주간주행등이 그릴까지 파고들었다(범퍼와 테일램프 그래픽도 소소하게 바뀌었다).
높은 트렁크 리드 위로 쿠페형 지붕을 그려 공간과 멋을 모두 챙겼다
'R-라인' 시승차는 고성능 분위기를 풍기는 장식을 더했다. 구멍이 네 개나 뚫린 배기구는 가짜다
무엇이 그리 멋질까. 줄줄이 나열하면 끝이 없어 딱 세 개만 골라 소개한다. 첫째는 태다. 앞쪽 오버행을 극단적으로 줄여 바퀴가 앞으로 돌진할듯한 비율에 쿠페형 지붕이 어우러져 맵시가 미려하다. 둘째는 인상. 휠아치를 가로지를 만큼 낮은 보닛이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윗단을 싹둑 가르며 공격적인 표정을 그린다. 셋째는 선이다. 철판 위에 예리하게 접어 넣은 선이 둥근 차체를 단단히 감싸 견고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왜건처럼 2열과 한 번에 이어지는 트렁크 공간이 넉넉하다
폭스바겐그룹 디자인 총괄 클라우스 지시오라는 아테온을 이렇게 소개했다. “본래 양립할 수 없던 상반된 가치를 한 번에 녹여냈습니다. 궁극적인 우아함과 실용성을 아우르죠.” 그 말 그대로다. 스포츠카처럼 날렵한 아테온은 신기하게도 실내가 아주 넓다. 2열 다리 공간은 동급 최고 수준인 1016mm까지 확보했고, 트렁크 공간은 왜건처럼 2열과 한 번에 이어져 최대 적재 용량이 1557L에 달한다. 더 친숙히 설명하면 1열 시트 뒤에서 트렁크 끝까지 거리가 2m가 넘는다. 직접 누워봤더니 키 177cm 정도는 널널했다.
부분변경 전 실내 / 말끔하게 집어 넣은 하만카돈 스피커
1열 역시 디자인 총괄의 말대로 메모리 시트와 마사지 기능, 헤드업 디스플레이까지 갖춰 무척 실용적이지만…. ‘궁극적인 우아함’은 잘 모르겠다. 소감을 가감 없이 적자면 교과서 같던 대시보드가 부분변경을 거치며 특색이 사라졌다. 본래 일자로 길게 이어지던 송풍구는 그릴과 헤드램프가 하나로 이어진 바깥 디자인의 연장선이었을 뿐 아니라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길쭉한 송풍구 중심에 보석처럼 박아 넣었던 아날로그 시계는 네모와 동그라미가 어우러진 기하학적인 매력이 도드라졌다. 이상한 사선으로 송풍구를 나누고 시계를 빼버린 지금은 그저 심심할 따름이다.
이전보다 10마력 강력한 200마력 최고출력을 내는 2.0L 디젤 엔진.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은 7.9초, 최고속도는 시속 237km다
아테온은 예쁜데다 공간까지 넉넉한 실용적인 세단. 파워트레인은 그 매력을 배가한다. 2.0L 디젤 엔진에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맞물렸다. 예쁘고 넓은 차가 노면 가리지 않고 달리며, 연료효율까지 뛰어난 셈이다. 다행히 디젤 엔진 단점은 꼼꼼히 지웠다. 공회전 진동이 적지 않지만, 엔진 스타트·스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진동을 느낄 새는 거의 없다. 배출가스는 SCR 촉매변환기를 두 개 엮은 트윈 도징 기술로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80% 줄였다. 뒤따르는 차에 조금이나마 덜 미안해도 좋다.
그리고 빠르다. 엔진 최고출력은 200마력, 최대토크는 40.8kg·m다. 요즘 같은 출력 과잉 시대에 평범한 숫자지만 체감 성능은 숫자를 웃돈다. 가속 페달을 콱 밟으면 초반부터 강력한 토크로 밀어붙이는데, 시속 100km 넘는 고속까지 활기차게 가속한다. 1750rpm부터 3500rpm까지 줄기차게 터져 나오는 최대토크 덕분. 무엇보다 번개처럼 기어를 바꿔 무는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 변속감이 상쾌하다.
R-라인 전용 시트가 운전자를 단단히 지지한다 / 노면을 꽉 붙드는 너비 245mm 피렐리 P제로 타이어
물론 이 정도로 ‘빠르다’는 수식어를 쓰기엔 과하다. 아테온의 진가는 꼬불꼬불 고갯길에서 드러났다. 강원도 평창 한 고갯길에서 스티어링휠을 꺾었는데 웬걸, 서서히 달렸는데도 안정감이 남다르다. 이에 자세를 고쳐 잡고 본격적으로 달리자 패밀리 세단 같던 차가 별안간 스포츠 세단으로 변신한다.
코너에 진입하기 직전, 첫 감탄이 터져 나왔다. 속도를 줄이고 앞바퀴에 무게를 싣고자 제동했더니 앞쪽만 고꾸라지는 보통 차와 달리 차체 전체가 균일하게 가라앉는 게 아닌가. 이어 스티어링휠을 꺾을 때 두 번째 감탄이 터졌다. 스티어링 기어비를 어찌나 바짝 조였는지 앞바퀴가 민첩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스티어링휠로 전해오는 노면 감각까지 생생하다. 이어 코너 중심점을 향할 때 과한 속도를 버티는 타이어와 쏠림을 억제하는 탄탄한 서스펜션을 느끼며 세 번째 감탄을 터뜨렸다.
화룡점정은 코너 탈출 실력이다. 코너 중심을 지나며 가속 페달을 밟자 네 바퀴가 든든히 박차고 나아가는데, 언더스티어가 발생할법한 상황에서도 아테온은 앞바퀴 방향을 굳건히 따른다. 비결은 폭스바겐이 자랑하는 전자식 디퍼렌셜 록 XDS다. 선회 시 코너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걸고 바깥 바퀴엔 반대로 동력을 보내 차체를 힘으로 비틀어 넣는 마법 같은 기술이다.
인디비주얼 주행 모드에서 서스펜션 댐퍼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이토록 역동적인 하체가 나긋하게 달릴 땐 또 부드럽게 늘어질 줄도 안다. 다른 고급 세단이 대개 그렇듯 주행모드에 따라 전자제어 댐퍼, 조향장치, 구동장치 등을 바꾸는데, 아테온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각 장치를 개별 설정하는 인디비주얼 모드에서 서스펜션 댐퍼를 무려 15단계로 조율할 수 있다. 차이는 또렷하다. 부드럽게 풀면 출렁일 정도로 힘을 빼고 단단하게 조이면 신경질적으로 굳는다. 개인적으로는 노멀 모드가 승차감과 안정감이 가장 조화로웠다. 괜히 ‘노멀’이 아니다.
모두 13시간 18분 동안 누적 605km를 달린 후 기록한 평균 연비는 1L에 17.2km. 역시 폭스바겐 디젤 연비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도심 주행 중 연비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고속 주행할 때 특히 연비가 대단했다. 공인 복합연비는 1L에 13.8km다.
폭스바겐 아테온은 변화무쌍하다. 멋진 외모와 넉넉한 뒷좌석은 비즈니스 세단으로, 2열까지 하나로 이어진 트렁크 공간은 패밀리 왜건으로서 손색없다. 무엇보다 평소 나긋이 달리다가도 고갯길에선 탄탄하게 노면을 움켜쥐는 움직임에 감탄했다. 그래, 폭스바겐 말마따나 ‘그란투리스모(장거리 여행용 고성능 자동차)’라고도 부를만하다.
글 윤지수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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