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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배지의 드레스 코드가 끌릴 때 택하면 된다. 젊은 롤스로이스 운전자를 기다리고 있는 고스트 블랙배지다
톤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더 어려 보인다.
롤스로이스를 탈 때마다 난 이 문장을 밀고 있다. 성공을 하면 삼각별을 갖고 업적을 남기면 스카프를 날리는 환희의 여신상을 품을 수 있다. 이번에 만난 롤스로이스 모델은 2세대 고스트다. 내 차는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환희의 여신상이 나를 지켜준다. 환희의 여신상은 대개 은빛을 내는데 이 여신은 검정 빛을 은은하게 풍긴다. 판테온 형상의 라디에이터 그릴도 마찬가지. 그렇다. 그냥 고스트가 아닌 고스트 블랙배지다. 2016년 레이스와 고스트 블랙배지 모델을 소개했고 이듬해에는 던, 그리고 2019년에는 컬리넌에도 블랙배지 트림이 생겼다. 블랙 테마로 외관을 꾸미고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을 조금 더 스포티하게 조율한다. 때문에 오너 드리븐 농도가 더 진해진다. 이전에 2세대 고스트를 타면서 직접 몰아도 운전이 쉽고 재미있었는데 블랙배지가 붙었으니 더욱 기대된다.
일단 출발에 앞서 외관을 구경한다. 고스트 블랙배지의 블랙 컬러는 진짜 블랙이다. 자동차 산업 역사상 가장 어두운 블랙을 완성하기 위해 45kg의 페인트를 사용했다. 이중 클리어 공정을 거친 후 네 명의 장인이 수작업으로 고광택 마감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빨려 들어가는 블랙 컬러다. 블랙이 다 블랙이겠지 하겠지만 이게 진짜 블랙이다. 딱 떨어지는 블랙 슈트를 입고 있어서인지 부드럽기보다는 날카로운 이미지다. 헤드램프를 포함한 각 파츠의 모서리를 그대로 뒀다.
1세대 모델과 비교하면 큰 차이점은 없지만 분위기가 확 다른 게 이 때문일 것이다. 우아함은 잃지 않으면서 더 낮은 연령대의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는 목표가 있었던 것 같다. 실루엣은 짧은 프런트 오버행과 긴 리어 오버행으로 마차처럼 클래식한 멋이 난다. 또한 A필러에서 시작해 트렁크 리드로 떨어지는 라인도 근사하다. 다른 차처럼 사이드 패널에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 명확한 캐릭터 라인을 그려 놓지 않았지만 심심한 구석이 없다. 실루엣과 크기에 시선을 뺏기다 보니 굳이 너무 많은 장식이 필요 없었다. 또한 롤스로이스의 상징이기도 한 플로팅 허브캡(Floating Hubcap)도 인상적이다. 언제나 더블 R 모노그램이 똑바로 서 있다.
이제 묵직한 도어를 연다. 진짜 여태 타본 차 중에서 가장 무거운 도어다. 두께도 어마어마하다. VVIP들의 안전을 위해 탱크 수준으로 만들었다. 들어가자마자 에르메스 매장 향이 난다. 물론 태어나서 에르메스 매장은 딱 두 번밖에 가보지 못해 그 향이 이 향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 향인 것 같다. 고급스럽다는 소리다. 가죽 컬러가 티파니 박스와 비슷한데 화사하면서 호사스럽게 보인다. 자칫 잘 못 사용하면 유치하거나 어색해 보일 수 있는데 역시 롤스로이스는 세련되게 잘 소화했다. 시각적으로도 만족스럽지만 촉각적으로 더욱 만족스럽다. 인테리어 레이아웃은 간결하게 가져가고 소재는 최고 등급을 사용했다.
시트는 크기가 크고 쿠션감이 좋다. 코너에서 운전자를 잡아 줄 사이드 볼스터도 없다. 이 차의 장르를 고려하면 그렇게 달릴 일이 없기에 최대한 컴포트에 포커스를 두고 시트를 완성했다. 수어사이드 도어를 통해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차가 거대한 만큼 레그룸과 헤드룸이 넉넉하다. 진짜 넉넉하게 타고 싶으면 롱휠베이스 모델을 선택해야 하겠지만 노멀 버전도 충분하다. 등받이 각도도 조절되며 테이블과 디스플레이도 마련되어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자동으로 문을 닫을 수 있는 기능이다. 최근 제네시스 G90에도 이 장치가 달렸지만 다른 점이 있다. 직접 문을 여닫을 때 감각이다. G90은 모터에 무리가 가는 느낌인데 고스트는 모터가 없는 느낌이다. 작은 것이지만 이러한 감각이 모여 하이엔드 럭셔리가 된다.
본격적으로 고스트 블랙배지를 느끼기 위해 시동을 건다. 정말 조용하다. 전기차보다 더 조용하다. 고요함 속에 고스트 블랙배지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라이빙 모드에 스포츠는 따로 없지만 언제나 잘 나간다. 터보랙도 없이 그냥 밟는대로 나간다. 과감하게 스로틀을 열면 머리를 살짝 들며 전진한다. 이때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고스트 블랙배지에는 V12 6.75ℓ 트윈 터보 빅 파워유닛이 박혀 있다. 노멀 엔진보다 힘이 더 생겼다. 최고출력 600마력, 최대토크는 91.8kg·m다. 어마어마한 출력이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스펙은 솔직한데 부드럽게 뿜어내기에 쉽게 이 힘을 다룰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이 파워를 자랑할 수 있는데 가속의 가속, 그리고 또 한 번 더 가속이 가능하다. 이러면서 차체는 붕붕 뜨지 않아 승객들은 평온하다.
낮이지만 머리 위에 별들을 두고 달린다. 여기에 환상적인 오디오 시스템으로 사치스러운 이동은 극에 달한다. 오디오 전문 브랜드의 엠블럼이 없지만 성능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록과 힙합 장르를 주로 드는 나와는 맞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미국 스타일 베이스를 좋아하는데 고스트의 베이스는 덩어리가 작고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상관없는 차라 내 취향을 고려하지 않았겠지만···. 팝과 재즈, 그리고 클래식에 최적화되어 있다. 고스트 블랙배지 오너들은 주로 이 장르를 즐긴다는 데이터를 토대로 세팅되었을 거다. 난 최고로 좋은 오디오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를 들을 때 소름이 끼치는지 여부다. 고스트 블랙배지는 국내 발라드를 틀어도 내 팔에 닭살을 돋게 했다.
지루한 글이 너무 길었다.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 글의 요지는 이것이다. 그렇다면 블랙배지가 노멀 모델과 주행 감각에서 차이가 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 시승해서 그런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확실히 1세대 고스트는 일반 모델과 블랙배지 간의 세팅이 체감될 정도로 차이가 났다. 블랙배지가 조금 더 단단했다. ‘단단’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고 덜 출렁거렸다. 그런데 고스트가 2세대로 진화하면서 하체에 약간의 긴장감을 심어줘서 그런지 블랙배지를 달아도 승차감이나 파워트레인의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노멀 고스트도 1세대와 달리 오너 드리븐의 재미를 넣어뒀다. 이미 잘 완성된 서스펜션을 블랙배지 모델이라 해서 억지로 단단하게 조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스포티한 드라이빙을 위해 블랙배지를 고르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단지 블랙배지의 드레스 코드가 끌릴 때 택하면 된다. 젊은 롤스로이스 운전자를 기다리고 있는 고스트 블랙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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