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새로운 전기차가 등장한다. 전기차가 늘어나는 만큼 순수 내연기관차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하이브리드카든 100% 순수 전기차든 전동화 꼬리표를 달아야 팔린다. 전기차 영역도 사라졌다. 프리미엄과 대중 브랜드, 차종, 차급을 가리지 않고 전기차가 쏟아져 나온다. 전기차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던 슈퍼카 브랜드도 전기 신차를 내놓거나 전동화 시기를 약속하고 있다.
전동화 시대로 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지면서 100년 이상 내연기관으로 시장을 주도해 온 브랜드들은 고민이 깊었다. 10년이 채 안 된, 혹은 갓 출범한 스타트업 전기차 전문 생산 업체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같은 출발선에 섰고 일부는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완성차의 축적된 노하우, 브랜드에 대한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 그리고 넉넉한 자금력으로 높은 상품성을 가진 전기차가 쏟아져 나오자 테슬라를 제외하면 신생 기업 상당수는 대부분 고전하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 가장 공격적으로 전동화 전략을 추진하는 곳은 메르세데스 벤츠다. 차근차근 차종을 늘리더니 어느새 A 클래스에서 S 클래스까지 모든 세그먼트를 채웠다. 대중 브랜드를 포함해도 가장 다양한 전기차 라인을 갖춘 곳이 벤츠다. 국내에서 현대차보다 많은 4종의 승용 전기차를 파는 곳도 벤츠다.
이런 가운데 주력 세그먼트 E 클래스의 전기차 버전 'EQE 350+'가 마침내 국내 판매를 시작하면서 벤츠의 전동화 의지와 성과는 더 뚜렷해질 전망이다. EQE 350+는 EQS에 이어 벤츠의 대형 전기차 전용 플랫폼 EVA2를 기반으로 한 두 번째 모델이다.
이전의 벤츠 전기차는 내연기관 플랫폼을 일부 개량해 사용했다. 벤츠는 전기 세그먼트를 확장하기 위해 AMG 시리즈와 상용밴을 위한 전기 전용 플랫폼도 따로 개발한다. 천문학적 투자다. EQE 350+는 외관이 주는 인상이 EQS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같은 플랫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길이(4965mm)와 너비(1905mm), 휠베이스(3120mm) 모두 E 클래스 세단보다 크다.
전면부는 매끄러운 표면으로 처리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차체 패널의 단면을 최소화한 심리스 디자인의 간결함, 20인치 알로이 휠과 디지털 라이트가 주는 고급스러움이 돋보인다. 벤츠는 EQE 350+ 외관이 하나의 활처럼 보이는 '원 보우(one-bow' 라인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감할 정도는 아니고 더러는 '못생겼다'라고 말했다.
실내는 12.8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와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 스티어링 휠 칼럼식 기어 레버 변속기로 더없이 깔끔하다. 물리적 버튼이 없고 변속기 패널이 사라진 센터페시아와 콘솔부 정돈감이 뛰어나다. 콘솔은 매우 높게 자리를 잡았다. 운전석과 동승석 경계가 확실하고 팔걸이로 유용했다. 컵홀더의 고정력이 떨어지고 동승자는 우측 천장 손잡이가 없다는 것에 불만이 컸다.
EQE 350+ 실내 하이라이트는 센터 디스플레이에 담긴 풍부한 첨단 기능이다. 벤츠가 자랑하는 MBUX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사용성을 학습해 유용한 기능을 알아서 배치하는 제로-레이어, 충전과 에너지 효율성을 최적화하는 일렉트릭 인텔리전스 내비게이션이 적용됐다.
사용감은 아쉽다. 메뉴가 복잡하고 터치에 대한 반응이 둔감할 뿐 아니라 지도 화면에 다른 기능을 활성화하면 창이 덮이는 방식이어서 혼잡스럽다. 화면 하나에 증강현실을 포함한 여러 화면이 중복으로 표시되면서 길 안내 표시가 가려지는 일도 있었다. 증강현실을 통한 길 안내 표시도 국산차에서 봤던 것들보다 판독력이 떨어지고 어설펐다.
EQE 350+에는 64개의 컬러가 대시보드 상단에서 도어로 이어지는 라인과 하단에서 다르게, 그리고 속도에 반응하며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엠비언트 라이트, 6종의 마사지가 가능한 멀티 컨투어 시트도 제공된다. 넉넉한 휠베이스로 확보한 공간도 만족스럽다.
EQE 350+는 88.89kWh 배터리로 최대 471km를 달린다. 고전압 구동 모터는 최고 출력 215kW(288마력), 최대토크 565Nm(54.1kgf.m)의 성능을 발휘한다. 요즘 나오는 전기 신차와 비교해 배터리 용량 대비 주행 범위는 아쉽고 성능 제원은 기대 이상이다.
전기차 특유의 가속 성능, 벤츠가 가진 견고함이 어우러져 달리는 맛 역시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운전석과 동승자석을 번갈아 200km를 달렸는데 과속방지턱, 또는 고르지 않은 노면을 지날 때 서스펜션 반응이 지나치게 신경질적이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벤츠다운 감성과 피드백을 준다. 움직이는 매 순간의 감성 역시 흠잡을 것이 없다.
다만 회생제동시스템의 변별력이 크지 않고 제동 성능 그리고 내연기관 감성을 살려준다는 사운드 익스피리언스는 이질감이 크고 자동차가 아닌 우주선 느낌이 강해 아쉬웠다. EQE 350+는 D모드를 기준으로 회생제동 강도를 높이고 낮추는 D+, D- 선택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고 강도의 D- 모드 반응이 다른 전기차와 비교해 느슨했다. 벤츠는 원-페달이 가능한 정도로 감속이 이뤄진다고 했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반면 회생제동 강도를 상황에 맞춰 자동 설정하는 D-오토는 유용했다. 감속이 필요한 굽은 길에 진입하면 알아서 회생 강도를 높여 주고 고속 주행에서는 관성을 최대화 해준다.
제동은 답답하게 이뤄진다. 매우 깊게 페달을 다뤄야 원하는 정지나 감속이 가능했다. 배터리 충전 성능에도 아쉬운 것이 있다. EQE 350+는 170kW 급속 충전으로 10%에서 80%를 채우는데 32분이 걸린다. 국산 전기차는 최대 350kW급 고출력 급속 충전으로 18분이 걸린다. 배터리 용량을 키워 얼마나 갈 수 있는지 이상으로 전기차 소구점에서 빠른 충전이 중요하다고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다.
[총평] 전기차는 대중과 프리미엄 브랜드 격차가 분명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혁신과 고급스러움을 충분히 채워 놓은 전기차도 많아졌다. 벤츠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도 전기차 경쟁에서는 이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 이미 전동화 기술에서 벤츠를 앞선 곳도 수두룩하다. 따라서 벤츠의 전기 동력계가 경쟁차보다 월등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EQE 350+은 벤츠 특유의 차분하고 안정적인 주행 질감과 보통의 전기차에 봤던 성능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고가의 첨단 사양으로 차별화를 했는지 모른다. EQE 350+의 가격은 보조금없는 1억 16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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