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기능을 집어넣은 전기차가 얼리어댑터에게 잘 어울린다면 ID.4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오랜만에 시승행사에 참여했다. 취향과는 맞지 않는 전기차지만 이제 신차의 주류는 전기차로 옮겨가고 있다. 아무튼 워커힐에서 양평까지 짧다면 짧은 약 120km 구간에서 ID.4를 경험했다.
폭스바겐 ID. 시리즈는 완전 전기차 플랫폼인 MEB 플랫폼에서 생산된다. 2019년 콘셉트 모델로 시작한 ID. 시리즈는 시티카부터 미니밴까지 각 세그먼트 별로 다양한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ID.4는 지난 2017년 상하이 모터쇼에서 프로토 타입으로 공개된 ID.크로즈의 양산형으로 2020년 9월부터 판매에 들어간 모델이다. ID.4의 보디형태는 크로스오버 SUV에 가깝다. 크기가 큰 편은 아니지만 탄탄하게 균형이 잘 잡혔고, 프런트만 봐도 폭스바겐 패밀리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외관 디자인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메이커의 아이덴티티를 잘 살렸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꾸민 것이 아닌 폭스바겐 특유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부분이 눈에 띈다.
실내도 요즘 출시된 전기차들에 비해 매우 단순하다. 전기차가 디바이스 개념에 가까워지면서 소비자들도 차에 대한 학습을 해야 하는 시대에 ID.4는 갖출 건 다 갖추면서도 단순한 디자인과 사용자가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직관적인 UI를 제공한다. 간단한 수납함, 센터페시아의 크지 않은 터치패널, 스티어링 휠 뒤에 있는 칼럼식 기어 셀렉터가 전부다. 이 기어 셀렉터는 딱 필요한 정보만 표시되는 계기판과 붙어 있으며, 스티어링 칼럼과 일체형이다.
내장재의 소재도 신경 쓴 흔적이 보이며, 물리 버튼이나 스위치를 최소화한 것도 눈에 띈다. 일단 복잡하고 번거로운 것들, 평소에 사용빈도가 낮은 옵션들을 다듬고, 줄여 폭스바겐이 추구하는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고 편의 장비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최근 출시되는 전기차들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기능에 중점을 두었다면 ID.4는 자체적인 시스템을 활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머전시 어시스트(Emergency Assist)라 불리는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인데, 레인 어시스트(차선 유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이드 어시스트, 파크 어시스트가 하나로 통합된 시스템이다. 이머전시 어시스트는 운전자의 행동을 모니터링해 운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시청각적인 신호, 부자연스러운 브레이킹 등으로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의 행동이 변화가 없을 경우 임의로 속력을 줄이거나 완전 정지까지 가능하다.
단순한 디자인의 실내는 직관적인 UI를 제공한다
구동방식은 싱글 모터, 후륜구동이다. 모터는 차체의 뒤쪽에 있으며, 최고출력은 약 204마력(150kW)이다. 전기차치고는 출력이 높지 않지만 이 역시도 폭스바겐의 실용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출시되는 전기차가 경쟁적으로 가속력에 집중한 성능을 내세우고 있지만 ID.4는 운전자가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전기차 특성상 최대토크에 금방 도달하지만 고속 영역에서는 가속이 더딘 편이다.
주행 모드 역시 간단하게 D와 B 두 가지가 제공된다. D와 B의 차이는 회생제동의 개입과 강도의 차이인데 시내 주행에서는 B가 적합하고 고속주행이나 장거리에서는 D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폭스바겐 측은 에너지 회생제동을 매끄럽게 제어한다고 하는데 운전자에 따라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B 모드는 전기 모터가 발전기 역할을 하면서 배터리로 전원을 공급하고, 완만한 제동은 회생제동을 이용한다. 운전자가 조작하는 유압 브레이크의 개입을 최소화 한 만큼 익숙해지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ID.4 뿐 아니라 전기차에서 운전 재미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운전 재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목표점에 이르는 '과정'을 생각하면 전기차에는 주로 '결과'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ID.4는 비교적 낮은 출력을 운전 재미로 커버하는데 후륜구동의 특성을 비교적 잘 살렸다. 코너에 진입할 때 액셀러레이터 조절만으로 스포츠카의 핸들링을 느낄 수 있으며 코너 탈출 때에도 뒤에서 밀어 주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회전반경도 적은 편이라 와인딩 로드에서는 운전자의 의도대로 잘 움직인다. 독일차하면 떠오르는 '딴딴한' 섀시의 느낌은 덜하지만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 전반적으로 운전이나 기능 등 차체 전반에는 누구나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요소를 빼먹지 않았다.
달리기는 비교적 후륜구동의 특성을 잘 살렸다
반면 서스펜션의 세팅은 매우 아쉽다. 전륜과 후륜의 서스펜션 조합이 이질적인데 구동을 담당하는 뒤쪽 서스펜션은 비교적 탄탄하지만 전륜 서스펜션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느낌이 가득하다. 물론 일반적인 주행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과속방지턱을 만나거나 노면의 상태가 좋지 못할 때 ID.4의 전륜은 노면의 진동과 충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요즘 전기차들이 내세우는 가속력은 준수하고 시내 주행이나 고속도로에서 큰 스트레스는 없다. 반응이 빠르고 속력을 쉽게 올릴 수 있으나 최대토크가 떨어지는 시점이 조금 빠른 편이다. 고속도로 주행에서는 시속 120km 구간까지는 거침없이 쭉쭉 치고 올라가지만 이 시점이 넘으면 가속이 더디다. 제원표에 나와 있는 최고시속이 160km라고 하니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니다.
완충 시 복합 주행거리는 405km다. 전기차들의 주행거리가 길어져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나 충전소를 찾아다니는 수고를 생각하면 여전히 전기차는 감당해야할 부분이 많다. 폭스바겐 코리아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급속충전 시 36분 만에 5%에서 80%까지(완속 100% 충전은 7시간 30분) 충전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충전 시간은 여전히 전기차가 풀어야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ID.4를 경험한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짧은 시간, 짧은 구간에서 시승으로 모든 것을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일단 폭스바겐이 추구하는 미래형 자동차에 대한 방향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합리적이고 단순하며,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ID.4는 폭스바겐의 자동차에 대한 철학과 접근성을 잘 살렸다. ID.4의 출시 가격은 5490만 원이며, 국비 보조금은 651만 원이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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